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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숨어있는 맥주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영화의 깐부, 맥주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기자말>
[윤한샘 기자]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위기의 케륨 광석, 노리는 우주의 악마..."
어린 시절 나에게 장고는 우주 보안관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보안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엔 권총을 찬 밝고 쾌활한 사나이. 그는 인디언이었다. 지구로부터 2000광년 떨어진 행성 뉴텍사스의 광물 케륨을 노리는 악당들을 물리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럴 수가. 우연히 유튜브에 뜬 <우주 보안관 장고>를 보던 야마토게임방법 중 원제가 궁금해 챗GPT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애니메이션이 없다는 게 아닌가. <우주 보안관 장고>의 실제 이름은 <브레이브스타(BraveStarr)>. 장고는 한국 더빙판을 위해 붙인 새로운 이름이었다. 40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진실에 심장 한쪽이 짜르르 아려왔다.
황야의 무법자, 장고
골드몽릴게임
▲ 2012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 포스터
릴박스 ⓒ 소니픽쳐스 코리아
나에게 장고가 애니메이션으로 남아있듯, 이전 세대에게 장고는 한 손에 관을 끌고 다니던 백인 총잡이로 떠오르지 않을까. 1966년 개봉한 <장고>는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영화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은 60~70년대 이탈리아 영화감독과 자본이 만든 서부 영화를 의미한다.
원래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이름은 미국인들이 조롱조로 붙인 별명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황야의 무법자'로 번안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달러> 3부작이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스파게티 웨스 릴게임뜻 턴'은 서부 시대를 미화했던 미국 전통 서부극과 극명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옷, 단순하고 지저분한 식기, 돈을 쫓아다니는 군상들, 척박한 환경 등 리얼리즘에 근거한 장면들이 화면을 채웠다.
주인공과 줄거리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미국 서부극이 신사답고 정의로운 남자들이 악을 처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스파게티 웨스턴은 복수와 돈을 좇는 냉소적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선악에 대한 모호한 구분과 열린 결말을 통해 기존 할리우드와 다른 미학을 그려내며 80년대 이후 할리우드 작품의 미장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쿠엔틴 타란티노 또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에 빠져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스파게티 웨스턴'에 큰 영감을 받았고, <킬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비롯한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를 리부트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66년 프랑코 네로가 주연을 맡은 장고는 기관총을 관 속에 숨긴 채 국경지대의 폭력 한복판으로 들어간 인물이다. 아내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한 손에 관을 끌고 가는 모습은 절망과 폭력으로 무너진 남자, 그 자체였다. 이 영화 이후 거칠고 말이 적으며 냉소적인 장고의 미장센은 서부극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신화를 2012년에 다시 불러냈다. 그러나 1966년 이야기는 과거에 묻어 둔 채, 시대와 인물 그리고 줄거리까지 새롭게 설정했다. 다만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오리지널 <장고>의 주제곡을 그대로 사용하며 미학적 계보는 남겨 두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남북전쟁 2년 전, 1858년 텍사스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새로운 장고를 흑인 노예의 역사 속으로 던져 놓았다. 복수에서 해방의 이야기로, 백인에서 흑인의 서사로, 사적 영역에서 역사의 발자취로, 쿠엔틴 타란티노 세계 안에서 장고는 시대를 가로질러 재해석된다.
자유와 해방의 술, 맥주
▲ 킹 슐츠 박사와 장고
ⓒ 소니픽쳐스 코리아
장고(제이미 폭스)는 흑인 노예다. 그는 아내 브룸힐다(케리 워싱턴)와 도주하다 잡혀 다른 농장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 맨몸으로 족쇄를 찬 채 걸어가는 장고에게 미래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장고 앞에 갑자기 킹 슐츠 박사(크리스토프 발츠)라는 독일인이 나타난다.
독일에서 치과의사였던 그는 지금은 연방 판사가 수배한 범죄자들을 합법적으로 처단하는 현상금 사냥꾼이 된 인물이다. 슐츠 박사는 장고가 자신이 찾는 수배자를 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백인 인솔자로부터 구해준다. 장고를 평범한 인간처럼 대우하고 자연스럽게 말에 태우는 그의 행동은 남부 백인들과 달랐다.
"검둥이가 말에 탔어!"
장고를 구한 후 둘이 함께 마을에 들어서는 장면은 영화에서 조용하지만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말을 타고 등장한 흑인을 본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슐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술집으로 들어가 '맥주 두 잔'을 주문한다. 그러나 바텐더는 흑인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보안관을 부르러 나가면서 할 수 없이 슐츠는 직접 비어엔진의 레버를 당겨 황금빛 맥주를 따른다.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의식처럼 천천히 그리고 길게 연출한다. 관을 통해 투명한 머그잔으로 천천히 차오르는 황금색 맥주와 잔 위로 솟은 거품, 그리고 그 거품을 금속 스틱으로 정교하게 깎아내는 스키밍(skimming)까지, 슐츠 박사는 작품을 그리듯 맥주를 따른다.
동일한 잔, 동일한 양, 슐츠 박사는 장고에게 황금색 맥주를 건넨 후 '치얼스' 대신 '프로스트'를 외친다. 흑인에게 금지된 공간에서 백인이 건네는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맥주는 '너는 노예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선언이며 동등한 자유인임을 보증하는 계약서였다.
잠깐. 여기서 맥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병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1858년 텍사스 작은 술집에 황금색 맥주가 존재했을까? 이 영화를 보는 99% 관객은 이 맥주를 황금색 라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이 장면이 나에겐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1858년 텍사스에 황금색 라거가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미국에서 라거가 소개된 시기는 독일 이민자들이 급증했던 1840년대부터다. 황금색 라거는 1860년대 이후 세인트루이스나 밀워키처럼 북부 지역에서 서서히 생산되었다. 1829년 미국 최초의 양조장 옌링(Yuengling)도 초기에는 에일을 만들었다.
1842년 최초의 황금색 라거 필스너 우르켈이 등장한 유럽에서도 1876년 냉동기가 발명된 후에야 황금색 라거가 조금씩 정착했다. 버드와이저가 얼음을 실은 냉장 열차로 맥주를 운송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니 양조장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냉장 맥주 유통도 불가능했던 1858년 텍사스에 황금색 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 2012년 장고와 1966 장고의 만남. 영화 후반부 프랑코 네로가 까메오로 출연했다
ⓒ 소니픽쳐스 코리아
그래도 만에 하나, 맥주인의 상상으로 가능성을 찾는다면, 크림 에일(cream ale)에 한 표 던지고 싶다. 크림 에일은 '크림'이라는 이름과 달리 옥수수가 들어간 가볍고 청량한 에일을 말한다. 원래 미국은 옥수수가 풍성한 나라였다. 버번위스키처럼 다량의 옥수수를 첨가해 맥주를 만드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영화에 나온 맥주가 옥수수를 잔뜩 머금은, 밝고 가벼운 크림 에일이라면 슐츠가 따른 황금색 맥주에 대한 의문점이 모두 풀린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고증이 아니라 상징을 선택했을 뿐이다.
타란티노가 고증 오류를 무릅쓰고 황금색 맥주를 보여준 건, 그게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근대적 합리성'과 '시민의 교양'을 상징하는 도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독일인 슐츠가 그 상징을 들고 있었을까?
지금은 독일이 합리와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로 인식되지만, 1858년 독일은 미국보다 딱히 나은 국가가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된 반면, 독일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왕국과 공국의 연방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더구나 군국주의 색채가 강한 프로이센이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독일인이 딱히 자유와 합리성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데, 슐츠가 자유주의자처럼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고민으로 자료를 찾던 중,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해석한 한 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 독일인, 킹 슐츠
유튜브 채널 '요런시점 movie'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킹 슐츠를 '포티에이터'(48er)로 설정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48er'는 1848년 독일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혁명의 실패로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들을 가리킨다.
1848년 유럽은 자유주의 혁명으로 물들었다.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터지자 곧바로 3월 베를린에서 지식인,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헌법제정과 의회구성을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봉기에 성공한 독일 시민은 최초의 민주적 의회, 프랑크푸르트 의회를 구성하고 입헌군주제를 추진했으나,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한 군주들의 반동으로 1년 만에 실패했다.
이때 혁명을 주도했던 많은 지식인, 노동자, 시민들이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48er'는 미국 지식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곳곳에 자리 잡았다. 맥주도 그중 하나였다. 특히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입영한 독일계 이민자들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 대농장주 캔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완벽한 남부 사투리로 매력적인 악역을 연기했다
ⓒ 소니픽쳐스 코리아
'요런시점 movie'의 가설처럼 만약 킹 슐츠가 미국으로 망명한 '48er', 즉 진보적 자유주의자 독일인이라면 그가 노예제를 혐오하고 귀족 같던 대농장주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맞선 이유가 모두 설명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슐츠의 행동과 선택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상금 사냥꾼 파트너로서 장고와 겨울을 보낸 슐츠는 브룸힐다를 구하기 위해 '만딩고 격투 노예' 거래상으로 위장해 그녀가 있는 캔디 농장으로 잠입한다. 슐츠의 계획대로 무사히 그녀를 빼 오려는 순간, 겉만 흑인인 집사 스티븐(사무엘 L. 잭슨)에게 정체가 발각되어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금액 1만 2000달러에 브룸힐다를 '구매'할 처지에 놓인다.
반강제적으로 노예 계약서를 쓴 슐츠. 비록 자신의 가치에 반하는 거래를 했지만 장고를 위해 사인을 하고 나오려는 순간, 캔디는 마지막 악수를 요구한다. 남부에서 악수는 계약의 성사를 의미하며 악수가 없는 계약은 성사된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사실 악수는 노예제를 인정하고 이 체제를 묵인하라는 강요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를 알고 있었던 슐츠는 악수를 거부하다 결국 숨겨둔 총을 꺼내 캔디의 심장을 명중시킨다. 그리고 자신 또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I couldn't resist)."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던 그는 야만과 타협하는 행위를 더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슐츠가 죽은 뒤, 장고는 홀로 남아 캔디 농장을 파괴하고 브룸힐다를 구해낸다. 1966년 장고가 황야의 복수자였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폭력의 세계에 저항하는 해방의 영웅이었다.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그 질문 앞에서 슐츠가 장고에게 건넨 황금빛 맥주는 여전히 반짝인다. 짧지만 가장 확실한 대답처럼.
문명과 야만은 생각보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윤한샘 기자]
"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위기의 케륨 광석, 노리는 우주의 악마..."
어린 시절 나에게 장고는 우주 보안관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보안관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엔 권총을 찬 밝고 쾌활한 사나이. 그는 인디언이었다. 지구로부터 2000광년 떨어진 행성 뉴텍사스의 광물 케륨을 노리는 악당들을 물리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럴 수가. 우연히 유튜브에 뜬 <우주 보안관 장고>를 보던 야마토게임방법 중 원제가 궁금해 챗GPT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애니메이션이 없다는 게 아닌가. <우주 보안관 장고>의 실제 이름은 <브레이브스타(BraveStarr)>. 장고는 한국 더빙판을 위해 붙인 새로운 이름이었다. 40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진실에 심장 한쪽이 짜르르 아려왔다.
황야의 무법자, 장고
골드몽릴게임
▲ 2012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 포스터
릴박스 ⓒ 소니픽쳐스 코리아
나에게 장고가 애니메이션으로 남아있듯, 이전 세대에게 장고는 한 손에 관을 끌고 다니던 백인 총잡이로 떠오르지 않을까. 1966년 개봉한 <장고>는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영화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은 60~70년대 이탈리아 영화감독과 자본이 만든 서부 영화를 의미한다.
원래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이름은 미국인들이 조롱조로 붙인 별명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황야의 무법자'로 번안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달러> 3부작이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스파게티 웨스 릴게임뜻 턴'은 서부 시대를 미화했던 미국 전통 서부극과 극명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묻은 옷, 단순하고 지저분한 식기, 돈을 쫓아다니는 군상들, 척박한 환경 등 리얼리즘에 근거한 장면들이 화면을 채웠다.
주인공과 줄거리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미국 서부극이 신사답고 정의로운 남자들이 악을 처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스파게티 웨스턴은 복수와 돈을 좇는 냉소적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선악에 대한 모호한 구분과 열린 결말을 통해 기존 할리우드와 다른 미학을 그려내며 80년대 이후 할리우드 작품의 미장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쿠엔틴 타란티노 또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에 빠져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스파게티 웨스턴'에 큰 영감을 받았고, <킬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비롯한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를 리부트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66년 프랑코 네로가 주연을 맡은 장고는 기관총을 관 속에 숨긴 채 국경지대의 폭력 한복판으로 들어간 인물이다. 아내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한 손에 관을 끌고 가는 모습은 절망과 폭력으로 무너진 남자, 그 자체였다. 이 영화 이후 거칠고 말이 적으며 냉소적인 장고의 미장센은 서부극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신화를 2012년에 다시 불러냈다. 그러나 1966년 이야기는 과거에 묻어 둔 채, 시대와 인물 그리고 줄거리까지 새롭게 설정했다. 다만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오리지널 <장고>의 주제곡을 그대로 사용하며 미학적 계보는 남겨 두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남북전쟁 2년 전, 1858년 텍사스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새로운 장고를 흑인 노예의 역사 속으로 던져 놓았다. 복수에서 해방의 이야기로, 백인에서 흑인의 서사로, 사적 영역에서 역사의 발자취로, 쿠엔틴 타란티노 세계 안에서 장고는 시대를 가로질러 재해석된다.
자유와 해방의 술, 맥주
▲ 킹 슐츠 박사와 장고
ⓒ 소니픽쳐스 코리아
장고(제이미 폭스)는 흑인 노예다. 그는 아내 브룸힐다(케리 워싱턴)와 도주하다 잡혀 다른 농장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 맨몸으로 족쇄를 찬 채 걸어가는 장고에게 미래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장고 앞에 갑자기 킹 슐츠 박사(크리스토프 발츠)라는 독일인이 나타난다.
독일에서 치과의사였던 그는 지금은 연방 판사가 수배한 범죄자들을 합법적으로 처단하는 현상금 사냥꾼이 된 인물이다. 슐츠 박사는 장고가 자신이 찾는 수배자를 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백인 인솔자로부터 구해준다. 장고를 평범한 인간처럼 대우하고 자연스럽게 말에 태우는 그의 행동은 남부 백인들과 달랐다.
"검둥이가 말에 탔어!"
장고를 구한 후 둘이 함께 마을에 들어서는 장면은 영화에서 조용하지만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말을 타고 등장한 흑인을 본 마을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슐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술집으로 들어가 '맥주 두 잔'을 주문한다. 그러나 바텐더는 흑인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보안관을 부르러 나가면서 할 수 없이 슐츠는 직접 비어엔진의 레버를 당겨 황금빛 맥주를 따른다.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의식처럼 천천히 그리고 길게 연출한다. 관을 통해 투명한 머그잔으로 천천히 차오르는 황금색 맥주와 잔 위로 솟은 거품, 그리고 그 거품을 금속 스틱으로 정교하게 깎아내는 스키밍(skimming)까지, 슐츠 박사는 작품을 그리듯 맥주를 따른다.
동일한 잔, 동일한 양, 슐츠 박사는 장고에게 황금색 맥주를 건넨 후 '치얼스' 대신 '프로스트'를 외친다. 흑인에게 금지된 공간에서 백인이 건네는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맥주는 '너는 노예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선언이며 동등한 자유인임을 보증하는 계약서였다.
잠깐. 여기서 맥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병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1858년 텍사스 작은 술집에 황금색 맥주가 존재했을까? 이 영화를 보는 99% 관객은 이 맥주를 황금색 라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이 장면이 나에겐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1858년 텍사스에 황금색 라거가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미국에서 라거가 소개된 시기는 독일 이민자들이 급증했던 1840년대부터다. 황금색 라거는 1860년대 이후 세인트루이스나 밀워키처럼 북부 지역에서 서서히 생산되었다. 1829년 미국 최초의 양조장 옌링(Yuengling)도 초기에는 에일을 만들었다.
1842년 최초의 황금색 라거 필스너 우르켈이 등장한 유럽에서도 1876년 냉동기가 발명된 후에야 황금색 라거가 조금씩 정착했다. 버드와이저가 얼음을 실은 냉장 열차로 맥주를 운송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니 양조장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냉장 맥주 유통도 불가능했던 1858년 텍사스에 황금색 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 2012년 장고와 1966 장고의 만남. 영화 후반부 프랑코 네로가 까메오로 출연했다
ⓒ 소니픽쳐스 코리아
그래도 만에 하나, 맥주인의 상상으로 가능성을 찾는다면, 크림 에일(cream ale)에 한 표 던지고 싶다. 크림 에일은 '크림'이라는 이름과 달리 옥수수가 들어간 가볍고 청량한 에일을 말한다. 원래 미국은 옥수수가 풍성한 나라였다. 버번위스키처럼 다량의 옥수수를 첨가해 맥주를 만드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영화에 나온 맥주가 옥수수를 잔뜩 머금은, 밝고 가벼운 크림 에일이라면 슐츠가 따른 황금색 맥주에 대한 의문점이 모두 풀린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고증이 아니라 상징을 선택했을 뿐이다.
타란티노가 고증 오류를 무릅쓰고 황금색 맥주를 보여준 건, 그게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근대적 합리성'과 '시민의 교양'을 상징하는 도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독일인 슐츠가 그 상징을 들고 있었을까?
지금은 독일이 합리와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로 인식되지만, 1858년 독일은 미국보다 딱히 나은 국가가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된 반면, 독일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왕국과 공국의 연방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더구나 군국주의 색채가 강한 프로이센이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독일인이 딱히 자유와 합리성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데, 슐츠가 자유주의자처럼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고민으로 자료를 찾던 중,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해석한 한 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 독일인, 킹 슐츠
유튜브 채널 '요런시점 movie'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킹 슐츠를 '포티에이터'(48er)로 설정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48er'는 1848년 독일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혁명의 실패로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들을 가리킨다.
1848년 유럽은 자유주의 혁명으로 물들었다.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터지자 곧바로 3월 베를린에서 지식인,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헌법제정과 의회구성을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봉기에 성공한 독일 시민은 최초의 민주적 의회, 프랑크푸르트 의회를 구성하고 입헌군주제를 추진했으나,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한 군주들의 반동으로 1년 만에 실패했다.
이때 혁명을 주도했던 많은 지식인, 노동자, 시민들이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48er'는 미국 지식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곳곳에 자리 잡았다. 맥주도 그중 하나였다. 특히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입영한 독일계 이민자들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 대농장주 캔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완벽한 남부 사투리로 매력적인 악역을 연기했다
ⓒ 소니픽쳐스 코리아
'요런시점 movie'의 가설처럼 만약 킹 슐츠가 미국으로 망명한 '48er', 즉 진보적 자유주의자 독일인이라면 그가 노예제를 혐오하고 귀족 같던 대농장주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맞선 이유가 모두 설명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슐츠의 행동과 선택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상금 사냥꾼 파트너로서 장고와 겨울을 보낸 슐츠는 브룸힐다를 구하기 위해 '만딩고 격투 노예' 거래상으로 위장해 그녀가 있는 캔디 농장으로 잠입한다. 슐츠의 계획대로 무사히 그녀를 빼 오려는 순간, 겉만 흑인인 집사 스티븐(사무엘 L. 잭슨)에게 정체가 발각되어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금액 1만 2000달러에 브룸힐다를 '구매'할 처지에 놓인다.
반강제적으로 노예 계약서를 쓴 슐츠. 비록 자신의 가치에 반하는 거래를 했지만 장고를 위해 사인을 하고 나오려는 순간, 캔디는 마지막 악수를 요구한다. 남부에서 악수는 계약의 성사를 의미하며 악수가 없는 계약은 성사된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사실 악수는 노예제를 인정하고 이 체제를 묵인하라는 강요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를 알고 있었던 슐츠는 악수를 거부하다 결국 숨겨둔 총을 꺼내 캔디의 심장을 명중시킨다. 그리고 자신 또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I couldn't resist)."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던 그는 야만과 타협하는 행위를 더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슐츠가 죽은 뒤, 장고는 홀로 남아 캔디 농장을 파괴하고 브룸힐다를 구해낸다. 1966년 장고가 황야의 복수자였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폭력의 세계에 저항하는 해방의 영웅이었다.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그 질문 앞에서 슐츠가 장고에게 건넨 황금빛 맥주는 여전히 반짝인다. 짧지만 가장 확실한 대답처럼.
문명과 야만은 생각보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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