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뉴클리어 파워)'이라고 재차 밝혔다. 북한이 이미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한미가 목표로 해온 '한반도 비핵화'는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물론 '뉴클리어 파워'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 때부터 자주 써온 표현이다. 하지만 이날 발언이 주목받는 것은 트럼프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유도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북·미 대화 전제조건으로 북한 비핵화 목표 포기를 요구했는데, 트럼프 발언은 이에 화답한 것일 수 있다. 중기청지원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치적을 쌓으려 김 위원장 요구를 두둔한 것이면 심각한 일이다. 만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발언을 전향적으로 해석해 판문점 2차 회동이 이뤄진다면 북한은 이를 핵보유국 인정의 시작점으로 선전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김 위원장 앞에서 비핵화 요구는커녕 핵강국임을 재차 떠든다면 북한의 핵 위상만 높여줄 수 있다.
이처럼 즉 마포래미안푸르지오 흥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충도 커진다. 한반도 현안에서 우리를 빼놓은 채 북·미가 결정하는 '코리아 패싱'이 대표적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미 간 2차 판문점 회동이 있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은 불참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북한 측 요구를 미국이 우리 입장을 배제하고 논의할 우려도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연말정산자영업자 CNN 인터뷰에서 APEC을 계기로 북·미 정상 간 만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에 활용하려는 이유일 테지만 북·미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만난다면 우리가 굳이 중간에서 적극 나설 일도 아니다.
이럴수록 한미는 혹시 있을 북·미정상회담의 목표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노벨 평화상을 노리는 트럼프의 치적으로 활용되는 데 그쳐선 설정비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 궁극적 목표임을 잊어선 안 된다.